조셉 휴벌터스 필라테스는 1880년 독일 뒤셉도르프에서 출생하였으며 1967년 미국 뉴욕에서 타계하였습니다.
유년시절 구루병, 천식, 류머티스열 등으로 병약한 아이였으며, 한때는 결핵에 걸릴까 염려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위해 당시에 성행하던 건강 운동과 온천욕을 하기 시작하기도 했으며, 당시에는 항생제와 같은 약물 및 현대 의학이 출현하기 전이었기에 질병에 대항하여 살아가는 방법이 운동이었고, 조셉 필라테스는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운동하였습니다.
조셉 필라테스는 운동을 열정적으로 하여 자신의 체력을 향상시켰으며, 육체미에도 관심이 많아 자신의 몸을 조형하였으며, 14세 때는 해부학 도해의 모델을 할 정도였습니다.
체조, 다이빙, 스키 등을 즐기며 10대의 나이를 보냈고, 20대에는 권투선수와 호신술 강사를 했으며, 운동계에 종사하면서 요가, 가라데, 선명상, 고대 그리스 및 로마의 운동법에도 관심을 갖고 접하였습니다.
1912년 32세에는 영국으로 이주하여 권투선수, 호신술 강사, 서커스단원 등의 일을 하였고 그러던 중 제1차 세계대전 (191년 7월 28일~1918년 11월 11일)이 발발하면서, 적성 국가의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랭커스터(Lancaster)에서 강제 수용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수용소 안에서 건강과 육체미 조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였고, 호흡을 이용한 일련의 매트운동을 기초로 건강회복 프로그램을 고안하여 수용자들을 동참시켰습니다. 경이적인 결과로 전쟁 중에 사망했던 사람들보다 독감으로 수 천명의 더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던 1918년에 이 수용소에서 독감으로 죽은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합니다.
조셉 필라테스는 나치주의Nazism으로 인해 많은 독일인이 자국을 떠났떤 1926년 (46세) 미국으로 이주하였는데, 이 때 미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간호사 클라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1929년 (49세)에 조절학(Contrology)이라는 이름으로 뉴역 8번가 939번지에 스튜디오를 개업하게 되는데, 클라라와 함께 운영하였습니다. 1920년대 말에서 1960년대까지 이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제자들을 교육하는데 힘썼는데 조셉은 시범을 보이고 클라라가 설명을 하며 교육을 하였다고 합니다.
스튜디오를 개업한 직후 미국에서는 대공항(이 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1934년(54세)에 조절학이라는 첫 저서를 출간하였습니다. ‘당신의 건강(Your Health)’ 이라는 제목의 이 저서는 건강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생각을 피력하였고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결정과 좌절의 순간들을 언급하였으며,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그리고 그 후에 겪은 여러 운명의 순간들을 언급하였습니다. 실질적으로 운동을 기술하지는 않았으며, 독자들이 자신의 스튜디오에 회원으로 가입하기를 간곡히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글의 후반부에는 조절학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업적이 승인 없이 도용되는 것에 대해 당황함도 서술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셉은 1934년 조절학이라는 첫 저서를 출간 할 즈음, 자신의 안락의자를 모델로 한 운다체어(Wunda Chair)를 고안하였습니다. 이 기구는 좌식생활로 인해 자세가 올바르지 못하고 운동이 부족한 현대인을 고려한 기구입니다.
1945년 (65세)에 두 번째 저서인 ‘조절학을 통한 인생으로의 회귀’(Return to Life through Contrology)를 출간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조셉은 자신의 운동에 대한 철학을 피력하였고, 가정에서 할 수 있는 34가지 동작으로 구성된 매트 운동을 사진과 함께 기술하였습니다.
조셉 필라테스는 생전 2권의 책과 몇 개의 영상물만이 출간되었는데, 그 이유는 공식적인 교육 과정을 두지 않고 비공식적인 교육과정인 도제방식으로 도제들에게 조절학은 전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도제들 역시 도제 방식으로 다음 도제들에게 조절학을 전수하였습니다. 도제 제도란 중세 유럽 도시의 수공업 기술자 양성제도로써, 도제 제도의 교육적 특징은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가 인격적 관계였다는 점, 기술교육과 인간교육이 병행하여 이루어졌다는 점, 장래의 지위를 보장하는 교육이었다는 점입니다.